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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익병 아내 강미형 나이 직업 수입 재산 집 딸 자기야 장모님



함익병 원장님은 1961년생으로 58세로 곧 환갑의 나이입니다.  


한 때 자기야에 출연하면서 국민사위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 때 크게 논란이 이는 바람에 

강제 하차한 적 있습니다. 


국민 피부과였던 이지함의 창립 멤버인 함익병씨는 월 5천만원씩 벌어들이며 100억 정도의 재산을 일구었다고 

언론에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때 이지함 피부과 바로 앞 이대앞에 살기도 하였는데 당시에는 병원 앞에 줄을 서거나 하지는 않았고 2002년 정도가 된 시점에서는 유명하긴 했지만 다른 차앤박이라든지 다른 강남 피부과들이 경쟁적으로 피부스켈링, 레이저 치료같은 것들을 도입했기에 어느정도 평준화가 된 시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찌되었든 그 유명한 이지함의 동업 원장이던 함익병씨는 당시 돈을 너무 잘 버니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함익병씨의 아내가 일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가족과의 소소한 시간은 좀 가지기 어려웠던 것 같은데요?!




많은 의학 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라는 직업때문인지, 뭐든지 학구적으로 자세하게 있는 그대로 매뉴얼 교과서를 중시하는 태도때문에 공감능력은 좀 부족하다는 아내의 평가가 있습니다. 


함익병씨의 아내 강미형씨는 동치미에서 잠깐 나오는 촬영분에도 함익병씨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시면서 불만을 많이 표출하더라구요~


교통법규를 지킬 때 불이 아직 바뀌지 않았으니 그냥 빨리 지나가면 된다는 아내와 불이 바뀌기 직전이니 미리 브레이크를 밟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자는 안전과 규칙의 남자 함익병씨는 서로가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함익병씨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이고, 최대한 안전하게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보호해가며 남들이 보면 칭찬할만한 운전습관이지만, 아내 강미형씨는 기함을 하는 것을 보니 수십년간 쌓인 감정이 뭐든지 안 좋게 보이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강미형씨는 광고를 찍을 때 남편이 옆에 있어주기를 원하지만 남편 함익병씨는 자기 분량만 찍고나면 초보인 아내옆에서 용기를 북돋아주기보다 오히려 다른 곳에 가서 아내가 끝내기를 기다리며 아내의 마음을 잘 몰라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을 잘 이해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나중에 광고 녹음을 할 때 아내가 헤매자 앞에 와서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계속 시켜대다가 결국 안으로 소환되는데, 막상 들어가니 아내 강미형씨는 그냥 함익병씨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얘기할 뿐이었습니다. 



강미형씨는 남편에게 원하는 것이 무척 사소하면서도 소박한데, 같이 마트에도 가고 여름휴가도 가서 함께 작고 사소한 것들을 나누며 옆에 있어달라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합니다. 


보통 여자들은 대한민국에서 정말 비싼 아파트에 살며 잘나가는 병원 원장에 학력도 높고 유명인사이고 100억 넘게 벌어다주고 재산 절반은 무조건 아내것이라고 각서까지 써준 함익병씨같은 남자가 로망의 대상인데 실제로 함께 살다보면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함께 손도 잡고 공원 산책도 하고 싶은데 함익병씨는 주로 혼자 운동하고 책을 읽고 등산을 가고 병원일을 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습니다. 


여에스더씨에게 함익병씨 아내 강미형씨는 자신은 월세방을 살아도 자기 남편하고는 못 살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라면 함익병원장님은 이제 아내의 작은 소원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게다가 함익병씨의 말만 믿고 학교라는 안정되고 좋은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50대가 훌쩍 넘은 지금에 와서 아내 강미형씨에게 여에스더씨처럼 돈을 벌어오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미 광고까지 찍고 자녀들 잘 기르고 집안 살림 정말 잘할텐데 말이죠~



함익병 원장은 자신은 집에서도 빨래와 청소는 한다며 마트만 같이 안가지, 집안살림까지 같이 분담해준다고 합니다. 


물론 아이를 키우고 하루종일 티도 안 나는 집안일을 계속 해야 하는 아내를 도와주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아내분은 잘 만족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방송에 나온 모습이 다가 아닐 경우가 많고 이는 함익병씨가 자기야에 나와 장모에게 살갑고 아들같은 사위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군대도  안가는 여성들에게 참정권은 4분의 3만 주고 세금 안내는 사람들의 투표는 막아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과 잘살 수만 있다면 독재도 괜찮고 왕정도 괜찮다는 발언을 하면서 큰 반발을 불렀고 결국 자기야와 하이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동시에 하차하는 일을 겪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녀둘이 돈을 안 번다고 투표도 못하게 막았다니 보통 독재적인 성격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말투도 다정다감한 말투로 전혀 적을 안 만들 것 같지만 한 번 맞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까지 찬탈한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 일로 함익병씨는 잠시 국민 사위에서 국민 욕받이가 되었고 돈을 갈고리로 긁어모으며 살다가 욕을 갈고리로 긁어모으게 된 적이 있습니다. 



병원과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를 많이 받았고 본업인 의사일까지 휘청하고 지장을 받을 정도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함익병씨는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독재에 대해 비판적이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였지만 반대로 해석하였고 박정희 대통령과 그 뒤를 이어진 군부독재를 무조건 찬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하던 시절이었고 잘한 것은 잘했다, 못한 것은 못했다 이런 식의 논조였는데 앞에서 얘기한 여성들에게 4분의 3만 참정권을 주자는 발언과 세금 안내는 자녀들에게 투표권을 빼앗았다는 발언과 맞물리며 굉장히 독선적이고 여성과 어쩔 수 없이 취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쿠표할 권리도 없는 반쪽 국민정도로 여기며 비하하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엄청난 반발심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그럼 10개월의 임신 기간과 말기암과 비슷한 출산의 고통, 그리고 산후 육아에 따른 밤을 새고 사생활이 거의 없는 엄마들의 고충을 겪지 않는 남성들에게는 아이 친권을 4분의 3만 인정하자는 얘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부분이구요~ 


어쩔 수 없이 실업자가 된 사람들에게 투표조차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잘못된 정책으로 실직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유일한 권리인 투표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를 너무 단순하게 세금을 내고 안내고와 결부시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재적이고 오만한 함익병 원장의 발언은 그동안 자기야에서 쌓아올린 서민적이고 막내아들같은 이미지와 너무 상반되는 모습이어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긴바 있습니다. 



하지만 함익병 원장은 정확히 이야기해서 극우 성향이 아닙니다.


함익병 원장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정치인이었고, 의사가 되지 않고 정치인이 되려고 했지만 당연히 부모님의 반대로 정치외교학과같은 곳을 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지함 병원을 개원하고 이듬해 자민련에 입당하였고 이곳은 오래도록 야당 총재였던 김종필 총재가 설립한 곳이기도 하기에 첫 정치 발걸음을 야당에 입당하였다는 것은 함익병씨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극우정치인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풍족하기보다 교사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사회에 올바르게 기여하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함익병씨는 자민련에 입당하지만 그 해 두번의 선거 모두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였고 이듬해 결국 탈당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선거 자금, 후원금만 받고 공천에서 모두 밀렸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다음 본격적인 정치활보는 2017년 안희정 도지사가 있는 바른 정당에 가서 팟캐스트 활동도 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당 김근태 의원을 오래도록 후원하였고 월간조선과 인터뷰에서도 김근태 의원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무조건 못했다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으로 무너진 국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잘살기 위해서 주도적으로 국가 성장을 이끈 것은 잘한 일이라는 것,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새마을운동을 하고 의료보험제도를 통해 전국민이 저렴한 비용으로 병원 진료를 받게끔 기틀을 마련한 것 등등 어떤 위급한 상황이라면 그 외양이 독재든,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이러한 논조롤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물론 군부독재 시절 유신을 선포하고 계엄령 등을 통해 시민의 권리를 압살하고 기업들에 정치 자금을 거두면서 점차 개인적인 부와 권력을 쌓아가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 잘못한 행동이지요~



그리고 함익병씨는 강적들이라는 코너를 통해서 하버드 출신 변호사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과 오래도록 친분을 맺게 되었고 프로그램을 통해 부쩍 친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종편프로그램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친분을 맺으며 전여옥씨와도 그렇게 친해진 것 같고 당시 노무현대통령 탄핵하는 날 함께 만나 여에스더, 홍혜걸 씨 등등과 함께 마치 축하를 하는 탄핵축하 파티 사진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여옥씨가 한달전 초대를 받은 것에 대한 답례를 하기 위해 다시 만난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강남 부자들이 더이상 웃지 못하도록 하겠다면서 강력한 부동산 제재와 정책들을 시행하던 때였던 지라 이미 강남부자였던 함익병씨에게는 아마 세금 등 정면으로 대치되는 부분이 있었음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함익병씨는 가로세로연구소로 연예인 사생활 폭로로 물의를 빚고 있는 강용석씨와 한달전에도 만나서 유튜브 방송촬영을 한 것으로 볼 때 불륜스캔들로 강적들에서 하차한 강용석씨와도 여전히 친분을 나누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함익병씨가 그렇다고 극우 성향이라기보다는 성격이 모질지 않아 한번 맺은 인연을 쉽게 저버리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자기야 백년손님에서 장모님과 모란 전통시장을 갔는데 처음 생선 가게에 들러서 보다가 장모는 마음에 안들어서 옆 가게로 가서 생선을 고르는데 함익병씨는 검은 봉지까지 들고 생선을 포장할 준비까지 하고 있던 가게 주인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는지 똑같은 생선을 본인이 같이 사주는 것이었습니다. 



장모는 옆가게에서 조기를 사고 함익병씨는 처음 가게에서 안사요라고 거절을 못하고 상처받을까봐 그랬는지 같은 조기를 동시에 자기돈으로 사는 모습을 볼 때 겉으로는 로봇같은 바른 생활 사나이지만 속정이 깊다는 것을 잘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 자기야에서 강제 하차 당하며 사회적으로 순식간에 매장당하고 생업까지 위협받았던 큰 아픔이 있던 함익병씨가 똑같이 강적들에서 하차되며 변호사일도 더이상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겨우 연예인 사생활 폭로나 하는 유튜브 채널로 후원금을 모집하며 사는 강용석씨를 보며 연민이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군사독재시절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한 민주당 김근태 의원을 오래도록 후원하고, 자민련에 입당했다가 공천에 실패하자 탈당 그리고 후에 안희정 도지사를 지지한하면서도 종편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새누리당 의원들과 우정을 나누는 함익병씨의 모습은 보수와 진보, 독재와 민주주의가 아닌 정치는 일종의 좀 더 잘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행보로 볼 때 국민이 좀 더 잘 살기 위한 정치가 목적인 사람이며 잘살기 위해서는 왕정시대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통령,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시급 올라가는 것이 직격탄이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필요했던 정책이고 모든 것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해보면 왜 저렇게 좋아하고 싫어하나?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함익병씨의 절친이자 이웃인 홍혜걸씨는 당시 사건이 터졌을 때 같은 남자로서 정말 존경할만한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빠라는 이야기를 하며 그가 정치인도 아니고 그저 일반 사람의 입장에서 발언이 미치는 파장을 예상도 못한 채 월간조선이 인터뷰이를 살살 자극하며 도발한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며 이해를 해달라는 식으로 글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함익병 아들과 딸



함익병 원장의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바이오 벤쳐 기업에 취직하여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트 교육을 받고 일찍부터 유학을 갔을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함익병씨만큼 대한민국에 유명하고 큰 돈 버는 사람도 많지 않았는데 자식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지 않는게 더 이상하겠네요~


게다가 어울리는 친구분들도 전부 의사, 교수, 병원장 등이고 자제들 또한 해외 명문대학을 많이 보냈겠죠?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는 공부 잘하고 유학가거나 명문대 가고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자식들도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항상 받을 것 같습니다. 


부모가 저렇게 잘나가고 유명한데 자식은 왜 저 모양이야? 이런 얘기 안듣게요~




사실 함익병씨는 어렸을 때 그렇게 부유하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님 두분 다 교사이긴 하셨지만 함익병 원장의 아버지께서는 7남매의 장남이셨고 아래 동생들을 모두 부양해야 했습니다. 


늘 생활비가 부족했고 2남 3녀의 자녀를 두셨지만 교사라는 직업에 비해서는 풍족하게 살지는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다만 공부하는 습관과 지적인 호기심, 두뇌를 물려받은 함익병씨는 돈은 없고 가난했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 중 하나가 되었으니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시리라 봅니다. 


함익병 아버지 


함익병 원장은 63세에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짓기도 하였는데요?!



전공의 시험을 코앞에 둔 아들을 위해 1주일을 미루고 이야기를 꺼냈고 이후 2년동안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함익병 원장은 관동의대에서 이지함 피부과를 15년만에 나와서 관동의대에 갔다가 수익 저조로 해고당한 후 이웃이자 절친인 여에스더씨와 함익병 앤 에스더라는 클리닉을 운영한 적 있습니다.


여에스더 원장은 방송 출연 이후 건물주가 돈을 잘 벌거라 생각하고 월세를 몇배로 올리면서 도저히 운영하기가 불가능해져서 폐업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후 방송활동과 비타민 홈쇼핑 등 부대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함익병원장과 동업을 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피부과와 가정의학과라는 전공과목으로 시너지를 창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현재는 혼자 강남 대치동 본인 소유 집합건물 역세권 빌딩에서 함익병 레이저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함익병씨가 사는 집은 도곡동 타워팰리스 30억 상당의 초고층 아파트입니다. 




그리고 함익병 원장은 여에스더씨를 보고 부러워서 아내에게도 저렇게 돈 좀 벌어오라고 한다고 합니다. 

돈에 깔려 죽게 해주겠다! 아이 키워야 하니 직장 그만두라고 하며 전재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각서까지 썼으면서요~?!



함원장은 다시 개업을 하고 돈을 예전만큼은 벌기 힘들었고 다른 병원들이 워낙 경쟁적으로 치고 나가니 몸과 마음이 

지쳐 다른 남편들처럼 아내에게 대신 돈벌어오라고 떼 아닌 떼를 쓰게 된 듯 합니다. 


정년까지 보장된 안정적인 교사직을 버리고 애를 키운 아내 강미형씨로서는 경력도 없는데 재취직이 거의 불가능한 나이에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함익병 원장은 진료볼 때 환자 3명 중 1명은 화를 내며 진료실을 나온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20대 남자가 부모와 함께 병원에 오는데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부모가 한다고 합니다. 


일부러 부모에게 반말까지 쓰며 아들 딸 보는 데서 자극을 하고 그 후 자녀분이 언어장애가 있으십니까? 이야기를 하면 부모들은 그때서야 눈치채고 더이상 대답을 안하도록 유도한다고 합니다. 


모든 병 치료에 있어서 환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데 정작 치료받는 당사자보다 병원비를 대는 부모가 주도적으로 나서게 되면 아마 결과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좀 거칠긴 하지만 함익병 원장은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고 치료의 결과가 좋으려면 환자 스스로 깨닫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신랑도 예전에 어머니와 피부과를 갔는데 10회 100만원짜리 치료프로그램을 끊었지만 담배를 피울 수가 없어서 정작 1, 2회만 가고 더이상 치료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함원장은 병원 예약제를 잘 안하는데 예약해도 펑크가 30% 가까이 되고 예약시간보다 늦게 와서 왜 먼저 진료안해주냐고 따지는 환자들 때문에 그냥 당일 오는 순서대로 치료한다고 합니다. 


200번의 등산을 일년에 하는 목표를 세우고 이룰정도로 한번 목표로 삼은 것은 대부분 이루고 살아온 함익병 원장님






이제는 아내의 소소한 소망대로 혼자 등산만 주구장창 가시지 말고 손잡고 마트에도 가고 1주일에 한번씩 아내와 함께 산을 타고 다니며 사랑과 건강을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동치미에 나오신 아내분 소망은 결코 더이상 경제적인 부를 이루는데 몰두하는 게 아니라 공감해주고 일상과 취미를 함께 하는 남편을 더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남편들은 '내가 돈만 많이 벌어다주면 되지, 좋은 집에 살고 예쁜 옷 입혀주고 밥굶지 않게 잘살아가는데 뭐가 더 필요해?'

하지만 여자들은 정서적인 부분이 충족이 잘 안되면 굉장히 외로워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히거든요!



저 또한 남편이 무슨 말을 해도 중간에 끊지 않고 잘 들어주고 손잡고 걸어다니며 노을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좋은 것들 함께 나눌 때 가장 행복하더라구요~ 


조사에 의하면 여자들은 남자들 생각과는 다르게 돈을 행복에서 4순위 정도로 친다고 나와 있습니다. 

아마 1, 2, 3위는 관계에 관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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