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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 나이 조폭 스타킹 장학생 서수용 미스터트롯 불화설 파파로티 


김호중씨는 1991년생으로 올해 29세입니다.

한석규와 이제훈씨가 출연해 큰 감동을 준 영화 파파로티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김호중씨는 스타킹에 나와 고등학생 파바로티로 유명해졌는데 투란도트 오페라의 공주는 잠못 이루고 네순 도르마를

벨칸토 창법으로 멋있게 불렀습니다. 


워낙 타고난 성량이 있었나 봅니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네순도르마같은 곡을 소화하기 어려워 아무도 공식적으로 부르지 못했는는데 고등학생 김호중군이 완벽하게 소화하며 당대 최고의 예능프로이던 스타킹에 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김호중군은 초등학생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네 집에는 커다란 전축이 있었는데 항상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나왔다고 합니다. 


나중에 스타킹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찔레꽃 노래를 부릅니다. 

부르다가 목이 메어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부르게 된 찔레꽃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노래였습니다. 


중학교 시절 방황을 거듭하다 고등학교 때는 이미 폭력조직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있을 정도로 일찌기 떡잎을 인정받았던 

김호중군은 경북예술고등학교 때 결국 퇴학을 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때 일생의 멘토 서수용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서수용 선생님은 김호중군의 상처받은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며 성악을 가르치게 됩니다. 


스타킹에서 성악천재, 하늘이 내려준 목소리라고 소개했지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고 타고난 벨칸토 창법으로 파바로티 뺨칠 정도로 노래 잘 부르는 소년이 바로 김호중이었습니다. 


건강 이상으로 좌절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고 지내던 서수용 선생님께서 일생의 제자 김호중군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세종 음악 콩쿠르에서 2008년 1등을 한 김호중군은 2009년에 대한민국 인재상과 수리음악 콩쿠르에서는 1등상을 거머쥐는 객관적으로 어마어마한 실력을 뽐내게 됩니다. 


스타킹에 출연한 동영상을 보고 독일 rutc 아카데미에서 유학 제의를 하게 되고 5년동안 전액 장학금으로 수학을 하게 됩니다. 


베를린에 있는 음악 아카데미에서 장학생으로 생활하고 유럽 초청 공연을 펼치며 살게 되리라고는 조손 가정에서 비교의식과 좌절감으로 막 나가며 조폭생활까지 하던 김호중씨가 과연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김호중 어린 조폭 생활 



김호중씨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가 조폭 생활인데요?! 고등학생 때 이미 조폭 조직에서 업소관리까지 맡아 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 이종격투기로 전국 대회를 재패하며 폭력 조직에 스카우트되었기 때문에 대우도 좋았습니다. 

후배관리와 업소관리, 공동 낚시터 관리까지 맡았고 월급도 꽤 많아 구두만 17켤레, 재킷은 10벌이나 두고 입었습니다.


오죽하면 서수용선생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금목걸이,금팔찌, 금반지까지 번쩍번쩍한 조폭의 모습이었으니 예고에서 호중군을 일반 학생으로 볼까? 생각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학교 생활과 더불어 밤늦게 업소까지 맡아서 관리하다보니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지각하고 결석을 반복하다보니 경북예술고등학교에서도 더이상 두고볼 수 만은 없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퇴학논의까지 나오게 되었는데요?! 


이 때 경북 예술고등학교에 계시던 서수용 선생님의 후배가 선배에게 소리가 기가 막힌 학생이 있는데 퇴학 직전이니 김천예고에서 호중군을 맡아주기를 바라며 극적으로 서수용선생님과 김호중군이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주선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만난 자리에서 목을 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엘 루 체반 스텔레 - 별은 빛나고' 라는 유명한 오페라곡을 열창하는 것을 본 서수용 선생님은 김호중군이 '대어' 임을 알게 됩니다.


모짜르트를 보는 살리에르의 감정을 느꼈다며 서수용 선생님은 김호중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왜 지금 이자리까지 왔는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수용 선생님은 성악에 대한 남다른 아픔이 있었습니다. 영남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아헨 음대로 유학을 떠났던 서수용 선생님은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기 위해 카를루스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20년 가까이 성악 공부와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어느순간 찾아온 타고난 재능의 한계를 느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른쪽 시신경에 이상이 생기면서 한국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해외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기에 국내 대학교수 자리 정도는 손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았고 때마침 김천 예고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막상 김천 예고 성악과 교사로 부임은 했지만 내심 고작 고등학생들 가르치려고 외국에서 20년 동안이나 고생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컸다고 합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성악가의 꿈을 접고 교수도 못하고 보람도 못 느끼던 서수용 선생님에게 어린 조폭 성악 천재 김호중이 돌아 돌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프로 성악가들도 1시간은 목을 풀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부를 수 있는 별은 빛나고 노래를 그 자리에서 완창하는 것을 보고 서수용 선생님은 너무나 놀랐고 타고난 성악 천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김천 예고로 김호중군을 데려 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문신을 새기고 덩치 큰 조폭의 모습으로 나타난 김호중군을 본 다른 선생님들이 '아이들 물들인다'며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결사 반대를 외치는 선생님들을 잠잠하게 한 것은 김천 예고 교장 선생님의 결단이었습니다. 


방황하는 학교 부적응 학생 김호중군 같은 사람을 가르치고 키워내는 게 미션 스쿨의 사명이라고 말입니다. 


김호중군이 성악과에 갔지만 동떨어진 외모와 행동 등으로 친구들과 쉽게 동화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서수용 선생님은 지혜롭게 아이들과 회식을 하면서 자연스레 친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 훗날 서울대 성악과를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된 성악과 모범생 이재명군이 김호중군에게 먼저 다가왔고 말을 트며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퇴학 대신 김천 예고에 전학은 성공했지만 한달 내내 잠을 자고 선생님을 힘들게 하기도 하였지만 호중군은 50일만에 tbc 음악 콩쿨 남자 성악 부문에서 우승, 전국의 최고 실력파만 모인다는 세종음악 콩쿨 남자 성악 우승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천재 성악가의 출현을 알렸습니다.





잘 적응하고 무사히 학교를 다닌다 싶다할 때 한 콩쿨에서 예선탈락한 호중군은 다시 흔들리며 열흘이나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등교한 호중군이 말한 첫 마디는 전학시켜달라는 말이었으며 선생님께 넘 큰 실망을 드려 더이상 예전의 사제관계로 돌아가기 힘들것 같아서가 이유였습니다. 


이 때 서수용 선생님은 배신감과 섭섭함을 느꼈지만 호중군을 내치지 않고 아버지가 아들을 혼내듯 뺨을 한대 때린 후 다시 함께 울며 껴안았습니다. 


서수용 선생님께서 김호중군을 받아들이며 '절대 결석하지 말 것' '폭력을 쓰지말 것' 이 두가지를 지키는 조건을 내걸었고 그렇다면 절대로 호중군을 버리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서수용 선생님은 더이상은 김호중군을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너는 더 심했다, 더 내 속을 썩인 수용이 네 손을 끝까지 안 놓았는데 지금이라도 놓아볼까?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서수용 선생님은 감히 호중군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대구에 자취방이 있던 호중군을 학교 출석 시키기 위해 무려 6개월을 30분 일찍 기상하여 김호중군을 데리러갔던 서수용 선생님은 호중군에게 영혼의 스승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호중군은 조폭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대가도 치뤘는데요?! 어느날 연락을 끊은 호중군을 찾아온 조폭선배들은 어디론가 끌고가 자정부터 아침 7시가 될때까지 계속해서 때렸다고 합니다. 


파파로티 영화와는 달리 김호중군은 온몸으로 목숨을 담보로 조직폭력배의 생활을 청산한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살아도 쉽게 쉽게 적지 않은 돈을 만질 수 있었는데 할머니의 사랑과 자신을 받아준 선생님과 김천예고 교장선생님과 친구들을 더이상 실망시키기 싫었을 것입니다. 



하도 맞다보니 처음에는 아프다가 나중에는 몸에 감각이 없어졌고 3일 내내 방에서 누워 나오지를 못할 정도였으니 호중군이 다시 제대로 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큰 고비를 넘은 호중군은 거침없이 시상식들을 휩쓸며 고등학교 3학년 때 네순 도르마를 3개월만에 원숙하게 표현하는 최초의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학교 정기회에 선 김호중군을 찍은 동영상을 고삐리가 부르는 네순도르마라는 제목으로 너튜브에 올린 서수용 선생님은 그 해 스타킹에 제자와 함께 출연하고 2회 우승에 빛나며 여기저기 실기 제의를 하는 대학들 속에서 한양대 음대를 고르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 불화설 



김호중씨가 미스터 트롯 블로그에서 최후의 7인 사진에서 제외가 된 적 있습니다. 

티브이 조선 미스터 트롯과 불화가 있어서 사진에도 없는 것 아닌가? 하였지만 그 이유는 김호중씨가 개별적으로 

매니지먼트를 관리받고 있는 이유도 있습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매니지먼트 관리를 맡기로 한 뉴에라 엔터테인먼트는 김호중씨만 별도로 기존에 매니지먼트사가 

관리하고 함께 무대에 설때만 같이 활동하기로 하였습니다. 


라디오스타에서 4위를 한 김호중씨가 아닌 7위를 한 장민호씨가 진선미와 섭외된 것도 이때문입니다. 



라스에서는 미스터 트롯 4위 김호중씨 얼굴을 못봤지만 바로 몇일 후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방송을 찍고 있어 출연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미 스타킹 2번 촬영을 통해서 전국구 스타가 되고 팬도 적지 않았기에 내일은 미스터트롯 전담 매니지먼트회사와 계약해서 활동해나가는 것은 오히려 서로에게 방해가 되고 효율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양대 음대 재학 중에 독일 베를린 RUTC를 전액 장학금을 받고 가게 되면서 한양대학교 성악과는 중퇴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5년동안 독일에서 성악 공부를 했기에 거의 대학원까지 간 것이나 마찬가지의 기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국내에 와서는 중복되고 더이상 배울 게 없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실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기에 어느 대학 교수를 가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요? 


남한테 박수받는 인생을 살아라는 할머니의 유언과 절대 자신을 버리지 않고 미스터 트롯에 출연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멘토가 되고 있는 서수용 선생님을 만나 김호중군은 정신없던 방황의 늪에서 건져올려지게 되었습니다. 




트롯괴물로 불리우며 성악과 대중가요 트롯트를 넘나드는 전천후 보컬이 된 천하무적 김호중군은 음악은 자신이 신에게 받은 소중한 달란트라며 고아원 등지에 재능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김호중 팬카페는 최근 2억을 모아 코로나 19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거액을 쾌척하였다고 하니, 가수를 닮아 정말 성숙한 팬심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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