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덕화 부인 김보옥 나이 아버지 이예춘 이덕화 딸 이지현, 아들 이태희 재산


한국 최고의 신스틸러이자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갖춘 원로 배우 이덕화.


이덕화는 최무룡(최민수 아버지), 독고성(독고영재 아버지), 허장강(허준호 아버지)과 함께 50~60년대를 주름잡던 영화배우 이예춘의 아들로 태어났고, 연안 이씨, 고향은 서울 성북구 입니다.


이덕화 나이는 1952년 5월생으로 올해 67세. 환갑을 한참 넘은 나이임에도 드라마, 영화, 예능, MC까지 종횡무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학력은 경희고등학교를 나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키는 174cm/65kg.


데뷔 당시에는 비교적 이른 나이때부터 청춘영화에서 하이틴 스타로 급부상하면서 많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이후 TV드라마에서도 인기드라마의 주연급으로 캐스팅 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72년 TBC 공채 13기로 데뷔하였고, 당시 국민여동생 임예진과 함께 영화 '진짜 진짜 미안해' '진짜 진짜 잊지마' '대학얄개' 등에 출연하면서 하이틴 스타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덕화는 특히 악역연기가 독보적인데 '사랑의 종말'에서 연기한 남현필 회장은 전무후무한 최강의 악역으로 평가 받고 있고 연기지망생들에게도 악역연기에 있어서 교과서라고 불리울만 합니다. '제5공화국'에서 보여준 전두환역도 레전드급 연기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덕화는 그의 커리어 내내 거칠고 반항적이지만 상대역 여성에게 목숨 걸고 사랑을 바치는 순정파 연기를 펼치며 청춘스타나 주연급 남자배우역을 맡아왔습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CEO, 조선시대의 왕, 역사적 위인 등으로 많이 출연하면서 이쪽분야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며 거물배우로 자리매김하였고, 최근에는 카리스마는 여전하지만 위트가 있는 인물이거나, 아예 코믹한 역할도 종종 맡으며 연기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영화 '성춘향전' '개벽' '맨발의 청춘77' 등과, 드라마 '사랑과 야망' '한명회' '무인시대' '제5공화국' '대조영' '자이언트' 등 수많은 인기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MBC, KBS연기대상에서 대상과 최우수연기상, SBS연기대상 공로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 등 많은 수상경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CF광고업계의 레전드로 꼽히는 '트라이'광고, '로얄디'광고, '킨사이다', 가발업계의 레전드 하이모광고는 16년을 넘게 광고모델을 해 오고 있고, 예능MC로도 탁월한 재능을 보이면서 'MBC대학가요제', '쇼2000' 특히,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원조MC로 거의 10년간 진행을 하면서 '부~탁 해요'라는 불후의 유행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최근에 이덕화는 그가 50년넘게 취미로 즐겨왔던 낚시 소재를 최초로 예능에 접목한 채널A '도시어부'에 출연하여 아주 즐겁게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낚시'란 소재 하나만으로도 1회분량 예능을 혼자서 재미있게 풀어나갈수 있다는 탁월한 예능감까지 갖추고 있는 이덕화에겐 가희 이덕화 맞춤 예능프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덕화 상어 낚시로 잡음


지금이야 연예인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예전에는 고정관념이 있어서인지 자신의 영역에서만 활동을 하는 경우가 굳혀져 있는 경향이 있었는데,

워낙에 다재다능하고 활동영역이 폭넓었던 이덕화는 배우와 예능 진행자MC 분야의 범주를 최초로 허물어뜨린 인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 이덕화의 연기인생에 있어서 두서너번의 큰 고비가 있었는데요. 

이는 오토바이 사고와 총선 출마, 그리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찾아온 탈모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큰 고비때마다 별탈없이 잘 넘길 수 있었던 건, 이덕화 부인 김보옥씨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내조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덕화 부인 김보옥


이덕화와 아내 김보옥의 러브스토리를 보면 감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이덕화를 있게 한 장본인이 바로 부인 김보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요.


이덕화 아내 김보옥 나이는 이덕화와 동갑으로 1952년 7월 경기 안성에서 출생하였고 서울에서 성장기를 거쳤습니다. 김보옥 언니는 원로영화배우 겸 시인 김보애입니다. 김보애의 딸 김진아와 아들 김진근 역시 배우로(김보옥에게는 조카들) 배우집안입니다. 김보옥 학력은 서라벌대학교 무용학과 졸업입니다.



1973년에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심청전'에서 주인공 심청 역, 이듬해 '춘향전'에서 주인공 성춘향 역, 그다음해인 1975년에 '맹진사 댁 따님 시집가는날'에서 주인공 맹갑분 역을 했습니다. 1975년에 KBS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였지만, 1980년 한국무용가로 전향하게 됩니다.


이덕화와 김보옥은 4살때부터 한동네에서 함께 자란 동네친구로 흉허물 없이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린시절부터 김보옥이 참 예뻐서 동네 어르신들이 '이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당시 이덕화도 따라서 '이쁜아~'라고 불렀다는데 아직까지도 아내를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ㅎㅎ 



아내에게 이런 낯 간지러운 호칭을 나이들어서도 쓴다는 걸 못미더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는 2015년 '아빠를부탁해'에 이덕화가 딸 이지현과 함께 출연했을때, 관찰 예능으로 집안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실제 '이쁜아~'를 연발하는 이덕화의 모습에 사실인것으로 판정. 근데 이덕화가 '이쁜아~'라고 했을때 아내 김보옥말고도 딸 이지현도 반응하면서. 이덕화 집에 이쁜이는 2명인것으로 판정?!


이처럼 어릴적부터 알고 자란 이덕화와 김보옥은 동네친구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김보옥이 이덕화를 짝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이덕화가 종종 "딴데 시집가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합니다.



그러다가 1977년 이덕화의 오토바이 사고로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지게 되는데요.

젊은시절 철이 없었던 이덕화는 당시 오토바이 질주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친하게 지내던 청춘스타 전영록의 400kg짜리 오토바이를 광속으로 몰고가다 10톤 버스에 깔리는 대형사고가 납니다. 당시 사고로 70m이상 끌려가고 청바지에 벨트만 남고 재킷은 목부분만 남아 있었다 하니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 전영록의 아버지 황해가 위험하다고 절대 오토바이를 몰지 못하게 해서 이덕화가 빌려타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 합니다.)



그 오토바이 사고로 이덕화는 14일간 의식불명 상태였고, 친구들도 이덕화가 살아날 수 없을거라 생각하고 방송중에 묵념을하고 심지어 조의금까지 걷었었다고...누가보더라도 당시 이덕화의 상태는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었고 재기는 불가능해 보였다고 합니다. 

이덕화는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지체장애3급 판정을 받아 복지카드까지 발급받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당시 식도 올리지 않았던 여자친구 김보옥은 이덕화를 위해 헌신하기 시작하는데요.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던 이덕화가 14일만에 의식을 차린후로도 2년간 반신불수 상태로 꼼짝못하고 병원신세를 져야했던 이덕화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병수발을 들었던 것이 여자친구 김보옥이었습니다.



이덕화 - "그때 식도 올리지 않은 아내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정성껏 병수발을 해줬어요. 당시 처형들이 몇번이나 병원을 찾아와서 아내를 끌고나가려고도 했지만 아내는 끝까지 병실에서 새우잠 자가면서 간호해주고 제 곁을 떠나지 않더라구요."



이덕화 - "아내가 2년간 반신불구 상태였던 내 대소변을 다 받아내줬어요. 당시 나는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살아난다해도 장애자가 될지, 다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이덕화는 꽃다운 나이에 기약없는 병수발이나 하고 있는 아내가 안타까워보여서 나 만나지 말고 다른사람 만나 시집가라고 윽박질렀는데도, 끝까지 자기 곁을 지켜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이덕화는, 이후 아내 김보옥에게 꽉 잡혀 살고 주변에서 공처가라고 놀려도 인정하면서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헌신적인 아내의 사랑을 잘 알고, 아내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당시 김보옥은 탤런트로 데뷔하여 활동을 하려던 때였으나, 남자친구 이덕화의 사고로 꿈을 접고 오롯이 이덕화의 병간호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후에 이덕화의 3년 병수발이 끝난 1980년에는 무용가로 전향하면서, 이후 남편 이덕화의 내조에만 집중하구요.



결국 3년후 병상에서 일어난 이덕화는 아내 김보옥과 동거를 하게 됩니다. 그 흔한 프로포즈도 없었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김보옥은 만족했던 거 같습니다.

이덕화 김보옥 두 사람의 결혼식은 첫 아이가 2살이 됐을때나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덕화의 오토바이 교통사고는 또 하나의 시련을 그에게 안겨줍니다.

>

바로 이덕화 아버지 원로배우 이예춘의 사망.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를 앓던 이예춘은 아들 이덕화의 교통사고 소식에 병세가 급악화되어 입원하게 되는데요. 아들 이덕화가 사고로 입원했던 병실의 바로 옆 병실에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이덕화 아버지 이예춘은 자신도 병으로 입원한 상태에서 이덕화가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오자 아들의 병 간호며, 사고 수습을 위해 동분서주 했다고 합니다. 1년정도 지나 아들이 병세가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자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진 이예춘은, 아들 이덕화가 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보내기위해 겨우 엘리베이터로 아버지를 옮겼는데. 그 엘리베이터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1977년 향년 58세.



이덕화 - "병원에서 나도 잘 걷지 못하는 상태로 위독한 아버지를 모시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짧았던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아버지를 못 모신게 너무 죄송하고 난 정말 불효자다.."

아버지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덕화 - "아버지, 아이들 잘 컸어요"


이덕화의 방배동 집 에는 대종상 트로피가 4개 있다고 합니다. 1989년 27회 '추억의 이름으로' 연기대상, 30회 대종상에선 영화 '개벽'으로 연기대상. 이듬해 31회 대종상에서 '살어리랏다'로 대상을 받았는데, '살어리랏다'는 한국 남자배우로는 최초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받게 됩니다.

4번째 대상은, 이덕화가 아닌 부친 이예춘이 1962년 1회대종상 시상식때 '현해탄은 알고 있다'로 받은 남우조연상 트로피.


이덕화 정치 활동


이덕화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됩니다.

광명 갑 선거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나서서 동교동계 중진 새정치국민회의 남궁진 후보와 대결해서 근소한 차이로 고배를 맛보게 되는데요.


이덕화가 총선에 출마하게 된 계기가 된것은,

김영삼의 장녀였던 김혜영이 이덕화와는 초등학교6학년시절 단짝이었다고 하는데, 어릴적 친구의 아버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됐다고 합니다.


실제 김영삼 대선 후보 TV광고의 단독 모델이 이덕화였고, 이덕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처음 대면했을때 김영삼은 친근한 말투로 "너 왜 연락을 안하냐? 연락 좀 하고 살자"라고 말했다 합니다.



당시 이덕화가 하이모CF외에 TV나 스크린에 수년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도 선거에 낙선했기 때문이고, 선거에 돈을 워낙 퍼부었던 이덕화는 큰 빚을 지고 거의 재기불능 상태가되어 연기활동도 할 여건이 안 되었습니다. 

(참고로, 당시에는 득표율 15%면 법정선거비용 전액, 10%이상이면 선거비용 반액을 돌려주던 선거비용 환급 제도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덕화의 연기인생에 있어서 2번째 위기가 찾아온 것이고, 크게 낙담한 이덕화는 대인기피증까지 걸려서 결국 무인도에서 3년간 혼자 짱박혀 살았다고 합니다.



아직도 총선 출마했던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덕화는,

"낚시하면서 물고기들과 이야기하며 살았어요. 술에 빠져 살면서 원망과 후회도 많이 했지만, 결국 다 내가 자초한 일이더라. 그 후에라도 다시 받아준 시청자와 방송관계자들께 고마운 마음 뿐이죠. 요즘도 간혹 정치할 생각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마음 접은지 오래에요"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당선된다해도 4년간 국회의원 하고 돌아오면 그땐 환갑, 진갑이 다 될텐데 누가 받아주겠냐. 한번은 용서가 될지 몰라도 두번은 안된다. 4년간 국회의원 뱃지 다는 맛에 정치할래, 아니면 반평생 함께 해온 사람들과 죽을때까지 연기할래'라고요. 그 말에 깨닫고 다시는 정치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모항에 있다는 이덕화 별장


연기자가 정치를 한다는 것이 비난받을 일까진 아니죠. 실제 최불암. 이주일, 이순재 등 많은 연기자와 방송인들이 정치계에 입문하기도 하구요.

어쨋든 이덕화 본인이 인생에 있어서 최대 실수라고 말할만큼 정치를 한것을 후회한다 말하고 있고 다시 정치하는일은 없을거라 말하고 있네요.

이덕화 인생에 있어서 2번째로 큰 위기를 겪는 동안에도 역시 집안을 별탈없이 건사한 것은 아내 김보옥의 몫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이덕화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죠.


이덕화 - "내 인생에 몇번 위기가 있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늘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세상 모든 남편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내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살아야한다"



모든 이덕화 재산은 이미 부인 김보옥에게 명의를 넘긴지 한참 되었다고 하고, 재산 관리, 경제력 전권도 부인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딸 이지현의 말에 따르면 이덕화 집안 서열에 대해, 

'왕은 부인 김보옥 여사고 영의정은 자신, 아빠 이덕화는 집에서 서열은 매만 안맞고 사시면....아빠는 엄마와 내 눈치만 본다'라고 했던 것처럼, 가정의 화목을 위해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이덕화 딸과의 관계도 마치 친구처럼 아주 좋더군요.




이덕화는, "난 그저 좋아하는 낚시 갈 때 미끼 값이나 몇 푼 달라고 하는 정도이고 여지껏 재산 관리를 전부 아내에게 맡긴채 살아왔는데 그게 바로 나의 행복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대배우 이덕화가 아내에게 꽉잡혀있고 집안에서 눈치만 본다는게 좀 웃기기도 하는데요. 참 멋지고 행복해보이는 가정인거 같습니다.


이덕화 딸 이지현 나이는 생년월일 1984년8월24일생으로 올해 나이 36세.

이지현 학력은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졸업. Newberry College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심리학과 학사 (졸업)
2016년 이지현은 대학시절 부터 알고 지낸 일반인 허모씨와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대학 졸업후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오랜만에 재회한 뒤 급속히 사랑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신랑 허씨는 준수한 외모의 호남형으로 이지현과 나이차 5살 연상이라고 합니다. 가족 소개후 이지현의 아버지인 이덕화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는 합니다.

이덕화 지인 - "양가 가족 인사를 마친 뒤 일찌감치 결혼 날을 잡은 것으로 안다" "최근 청첩장까지 만들어놓고도 쉬쉬 해온 데는 상대인 신랑이 평범한 일반인이란 점을 걱정하는 것 같다"


이덕화 딸 이지현은 2008년 SBS `애자 언니 민자`에서 오양금 역을 맡으며 데뷔, 아버지 이덕화에 이어 부녀 연기자로 뛰어들었고,
이후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 `광개토대왕` `돈의 화신` `기황후` `장사의 신, 객주` 등에 출연했습니다.

이지현은 SBS `힐링캠프`에 아버지 이덕화와 나란히 출연하면서 부녀 연기자로 주목을 끌었고,
역시 함께 출연한 SBS `일요일이 좋다-아빠를 부탁해`에서도 입담을 과시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이덕화는 1남1녀를 두고 있고, 이지현의 오빠인 이덕화화 아들 이태희 직업은 두 사람이 소속돼 있는 디에이와이엔터테인트 대표이사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