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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옥 교수 결혼 가족 부인 고향 스타강사 수입 아내 딸 영화 들리나요? 


김창옥 교수는 1973년생으로 공고 전자과를 간 후 25살 나이에 경희대 성악과를 입학하였습니다. 

2007년에 결혼하여 슬하에 1녀 2남이 있습니다. 


스타강사 김창옥씨의 가족은 부모님과 2남 4녀입니다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어두운 어머니 사이에서 누나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청각장애 3급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김창옥씨의 말로는 노름과 도박을 즐겨하셨고 이러한 아버지와 소통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듯 합니다. 


즉 글로서 아버지, 아빠! 무언가를 요청해야 했는데 글로 적는데도 한계가 있는지라 잘 소통이 안된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김창옥씨의 어머니는 글을 모르셨기에 아들이 글로 적어주는 것도 아버지에게 전달을 해줄 수 없었나 봅니다...



또한 김창옥씨는 어릴 때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을 하시면서 눈비가 올 때만 쉬고 친구들과 고스톱 등 화투를 치시며 돈도 못벌고 부부싸움이 심해지며 극도의 공포심을 가지는 날이 많았다고 합니다. 


김창옥씨가 국내 대표적인 소통전문가가 된 데에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소통이 너무 힘들었던 부분과 귀가 어두운 남편과의 소통이 글로도 말로도 힘들면서 아내로서 굉장히 답답한 부분이 많으셨을 어머니가 계신 양육 환경이 많이 좌우한 것 같습니다. 


가장 가까운 보호자인 아버지와의 소통단절이 김창옥씨에게 인간과 인간의 소통에 큰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아픔이 사명이 되고 별이 된다는 말처럼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소통을 하는 방법을 강의하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저와도 비슷하신데 아버지는 일용직은 아니시지만 부두에서 밤낮으로 거친 바다 바람과 싸우며 무거운 콘테이너를 하역하는 작업들을 하셨고 생명이 위험한 순간도 많이 겪으셨습니다. 


마음이 좋아 늘 주변에 술 사주시는 친구분들이 많아 집에는 제대로 돈을 가져오지 못하셨답니다.

어린 삼남매를 키워야 하는 엄마로서는 너무 힘든 부분이 많았고 집에는 교육비도 못내고 도시락도 제대로 못쌀 정도인데 

아빠는 생활비조차 잘 안들고 오시니 어릴 때 내내 아빠를 원망하는 엄마의 모습을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죽어도 결혼은 안해야지! 생각했답니다 ^^ 하지만 막내인 제가 제일 결혼을 일찍 했답니다. 



김창옥씨는 국내 1호 보이스 컨설턴트로 책을 냈고 교보 문고에서 책을 보고 살까 말까 했던 기억이 나네요~


김창옥씨는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경희대 성악과를 입학하였는데요?! 


시스터 액트, 미션이라는 영화를 보고 I will follow him, 가브리엘's 오보에 등 영화음악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고 음악이 사람에게 주는 힘에 매료되어 5개월 동안 성악을 공부하여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남들은 다 졸업할 나이에 경희대 음대를 들어간 김창옥씨는 기죽지 않기 위해 복학생처럼 늘 군복차림으로 다녔다고 합니다. 


해병대를 갔다왔기에 누구보다 군기가 들어가 있었고 목소리도 성악도처럼 평소 중저음의 목소리로 일부러 굵직하게 꾸며서 냈다고 합니다. 


김창옥씨는 성악과에 들어가서도 예고생들 사이에서 열등감에 시달렸는데요?! 



평소 어깨와 목소리에 힘을 계속 주고 다니면서 성악과 교수님에게 '지금 가을인데 가을이 보이냐? 나가서 가을 풍경 좀 보고 오라' 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사는 것처럼 노래부르는데 살 때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온힘을 주고 산다는 말은 김창옥씨에게 어깨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살라는 교수님의 소중한 조언 아닐까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매주 한번 가서 교수님에게 레슨받으며 삶과 노래에 대한 태도를 배우고 지금까지도 멘토로서 소통을 계속 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창옥씨는 이후에 마이너 합창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고 편해졌다고 합니다. 


김창옥 교수는 자신이 주로 가정에서 들었던 말은 인간말종, 손모가지를 잘라버려야 된다 등등 주로 어머니가 아버지의 노름 도박으로 돈을 안가지고 오시는데 대한 원망하는 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창옥 교수님은 공고를 다녔지만 대학을 한 명은 꼭 갔다 와야한다는 어머니의 바램으로 계속 대학을 노크하였습니다. 

제주대학교에 떨어지고 재수해서 전라도 끝에 있는 대학 입시를 보았지만 또 떨어지고 전문대까지 다 떨어지며 결국 해병대를 입대하기로 결정합니다. 



군대 시절에 대해서는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시기여서 대학 다니다 온 후배 기수들에게 얼차려하며 때리기도 많이 때려 흑역사라고 합니다.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 두가지는 열등감과 너무 바쁘게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인의 열등감을 가리려고 하고 자꾸 다른 사람인것처럼 행동하고 과대포장하려할 때 상대방은 불편해하고 오래도록 관계유지가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행동할 때 상대방도 매력을 느끼고 저 사람의 캐릭터구나 하며 편안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소통을 잘하는 비결은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누군가에게 받을 때 자존감이 쑥 올라간다고 합니다. 


얼굴표정, 의성어, 의태어로 나타나는 영적언어가 사람들의 자존감을 쑤욱 올려주는데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새끼~ 우ㅉ?ㅜ쭈?쭈?쭈?쭈 할 때 내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부부끼리도 처음 연인관계에서는 정말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함부로 대하며 우습게 취급하고 말도 함부로 하게 되고 욕하고~ 그러면서 결국 상대방과 관계가 굉장히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김창옥 교수는 치과에서 한번 전화가 왔는데 간호사가 아버지의 치과치료비가 비싼데 대신 내줄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한다며 전화가 왔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청각장애 아버지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막둥이냐? 미안하다~ 라고 말씀하셔서 그 후부터 아버지와 소통이 다시 시작한 것 같다고 합니다.

항상 제주도에 내려가면 김창옥교수의 엄마가 나와있었는데 아버지가 처음으로 나오시더니 가자~ 하시며 혼자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셨다고 합니다.


김창옥 교수는 성악을 할 때 원래 자신의 음역대가 아닌 포지션으로 연습을 하는 바람에 나중에 자신의 원래 음역대를 찾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성악으로 성공하기 위해 수억을 썼지만 결국 성악가의 길은 가지 못하게 되었고 동기부여, 강연, 소통전문가, 작가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을 하였는데 삶의 힘을 빼면 길이 보인다는 취지의 내용이었고 기를 쓰고 달려들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꿈, 길, 야망, 욕망, 어떤 바램들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지 못한 것들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김창옥 교수 부인은 철저히 노출이 안되는 상태인데 아마도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의 얼굴이 절대로 보여지지 않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딸아이의 얼굴사진은 있는데 아들들한테는 무뚝뚝해도 딸한테는 딸바보의 면모를 그대로 잘 보여준다고 합니다. 


김창옥 교수는 포프리쇼를 오래도록 진행하며 매회 수십만회의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는데 현재는 제주도 바닷가 근처에 집을 한 채 사서 제주생활을 만끽하는 영상이 자주 올라오고 있습니다. 


포프리쇼 400회 정도 강연을 하고나서는 혼자 독립적으로 강연을 기획해서 진행하는 듯 합니다. 



제주도가 고향이지만 부모님 두분은 모두 전라도 분이셔서 본인은 전라도 사투리를 무척 자연스럽게 구사합니다. 


가톨릭 신부님들 초청에 강연을 하러간 적 있는데, 하도 앞에서 밝게 웃는 신부님의 얼굴을 보고 저분한테 나중에 상담 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강연을 계속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가 있는데 어느순간 우울함이 왔는데 신부님께 강의 끝나고 인사를 드리니 갑자기 신부님이 요즘 우울하고 죽고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면서 되레 심각한 얘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김창옥 강사는 자기 얘기를 입안에 다시 집어놓았다고 하는데요?! 




가족의 장례식이 있었던 바로 그 다음날 강연을 하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야 했는데 그날 강연을 하고나서 아, 이제 그만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마음과는 반대로 동기부여하고 유머를 계속 하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많이 느꼈나 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강연을 계속 하게 되었고 한국 아줌마들의 엑소, BTS라고 불리울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는 스타 강사입니다. 


1회 강연료는 차이가 좀 있지만 1천만원 전후일 것으로 예상하는데 예전에 한국에서 제일 비싼 강연료를 받던 분이 고려대 김용운 교수님이었는데 1회 1500만원이라고 한 적 있습니다. 




강사 이름값으로 그만큼 사람들을 모집할 수 있어야 하는데 특히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최고이고 본인 말로는 5급 이상 공무원분들이 잘 안 웃어서 힘들고 캠프에 중학생들 대상 강연을 갔는데 제일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줌마들은 리액션을 워낙 풍성하게 해주셔서 김창옥 본인의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내고 중학생들은 기껏 웃기려고 하면 '웃기려고 애쓴다' '나이먹고 고생하네' 이런 말들을 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 중학생들은 스타강사도 안통하는 무서운 집단인데 항간에서는 공산당도 중학교 2학년생들을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표정부터가 워낙 무슨 말도 잘 안통하는 세대여서 ㅋㅋ 생각해보니 넘 웃기네요! 


걍 걸그룹, 아이돌그룹, 프로게이머 분들이 공연하고 강연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내멋대로라는 케이블 방송에서 이승철, 신화 앤디, 류수영씨와 함께 4인조가 함께 방송 출연을 하였습니다. 

캠핑도 가고 서로의 삶도 초대되어 구경가는데요?! 


연예인들에 비해 입담과 비주얼 모두 뒤지지 않는 모습이 김창옥씨의 위상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당시 출연할 때 밝아보이지만 눈이 슬퍼보인다는 댓글이 많다며 김창옥씨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다 서울로 올라가버려서 어려서 혼자 외롭게 자랐다고 합니다... 




외로움과 소통에 관한 강연을 많이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어린 시절 외로움과 소통단절에서 기인간 것 같습니다. 


현재는 서울 여대 겸임교수, 뮤지컬 배우, 일반 배우로도 활약하고 있는데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 까메오로 출연한 적 있습니다.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들리나요에서 아버지와 화해의 과정과 귀수술을 진행하는 모습을 담았는데 아버지가 귀가 들리시며 아들과 소통해가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담겨 있는 영화입니다. 




본인의 치부를 보여주는 주변인들의 평가를 보면서 억울하기도 하고 커밍아웃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이상 꾸미고 가릴 것이 하나도 없어 너무나 속이 시원했다고 합니다. 


인생 최대의 숙제가 아버지와의 화해였는데 전국  최고의 귀수술잘하는 병원에서 김창옥씨 아버지의 귀를 치료해드렸다고 하니 정말 몇십년동안 아버지는 안들리는 채로 얼마나 슬프고 억울하셨을까요?


영화자금은 감독과 반반을 댔다고 하시는데 기술시사회를 하면서 영화 들리나요를 볼 때 너무 만족한 나머지 개봉하지 않아도 본전이상 건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평생 두고두고 자신이 힘들때 기쁠 때 영화 들리나요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될 것 같다며 무척 행복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도 10여권 정도 냈는데 사회적으로 큰 명사가 된 스타강사 김창옥씨를 아버지는 말씀은안하셔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습니다. 

김창옥씨의 앞으로 보여주실 발걸음이 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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