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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미 나이 아들 임성민 황성재 이혼 흰머리 남편 황민 음주운전


박해미씨는 1964년생으로 뮤지컬 배우이자 방송인입니다.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께서 대형 캬바레를 운영하시며 손꼽히는 부잣집에서 자랐습니다.


300평의 대저택에서 살다가 사업이 잘 안되었는지 고등학교 때는 부산 영도에 살면서 영도여자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5녀 1남 중에서 장녀로 태어난 박해미씨는 어렸을 때에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동네골목대장처럼 자랐다고 합니다.

여동생들은 큰 언니의 말은 거역할 수 없었다며 밤에 심부름시키고, 무얼 줘도 코딱지를 넣어서 줄 정도로 동생들에게는 

절대권력의 악동언니었다고 합니다.  

 

이화여대 성악과 학사를 입학한 박해미씨는 자매 2명 빼고는 온가족이 캐나다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박해미씨는 대학 다닐 때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첫남편이 된 임모씨였습니다. 박해미씨에게 한눈에 반한 

그는 박해미씨에게 미팅을 청했고 두번째 만남을 통해 공식 애인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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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미씨가 한번은 뮤지컬 연습 후에 점점 늦어지자 남친이 집에 갔을줄 알고 뮤지컬 선배의 차를 빌려타고 집으로 오게 됩니다. 


하지만 남친은 빗속에서 무려 3시간을 우산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길로 박해미씨를 마구 발로 밟습니다. 

오래 기다린 것도 열받은데 다른 남자의 차를 타고 내리는 것을 보는 순간 폭력이 나와버렸고 다음날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맞았다고 합니다.  


다음날 이 모습을 본 첫남편은 막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박해미씨도 이날 이렇게 기다릴 줄 알았다면 미리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연락할 방도가 없었나 봅니다. 

1980년대라서 개인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고, 무조건 만나서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연습이 늦어지면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집착과 폭력적인 면이 있기는 하였지만 잘해줄 때는 워낙 잘해주는 스타일이라 박해미씨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남편과의 사이에 첫아들 임성민씨를 낳았고 6살 때 박해미씨와 첫남편은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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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에 도청장치도 연결하고 시누이들은 감시부대로 동원되면서 박해미씨는 스트레스로 머리 정수리가 백발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캐나다에서 귀국한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고 의처증과 가난에 시달리며 살던 박해미씨를 이혼을 시켰고 아들의 양육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일방적인 성향이 짙고 의처증이 심했던 임모씨와 짧은 결혼생활을 하였는데 박해미씨는 이 당시 뮤지컬 스타가 아니었고 결혼 후에는 무대공백기도 가졌기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명문대에서 성악까지 공부하였지만 워낙 뮤지컬 공연 분야가 지금보다 훨씬 좁았을 것이고, 본인 또한 설자리가 무척 좁았다고 합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워낙 많았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통통 튀는 며느리역할을 맡기 이전이라 철저히 무명배우 박해미일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채 이혼까지 한 박해미씨는 3년 동안 장보고 뮤지컬 작품을 하고 온 후 국내에서 설자리가 없다는 것에 좌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작은 기회를 잡은 것이 95년 뮤지컬 1인 품바공연이었는데 94년 이혼하고 1년 후 혼자서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공연 중에 관객들 중 아무나 골라서 결혼식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운명적으로 황민씨가 무대로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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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연하의 황민씨는 이날 박해미씨를 보고 반한 후 계속 쫓아다닙니다. 열성팬의 팬심정도로 여긴 박해미씨는 계속 거절하였고 너무 쫓아다니니 경찰을 부르기까지 하였답니다. 


비슷한 과정으로 자신을 쫓아다닌 첫남편과의 한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황민씨 또한 박해미씨를 자신의 또래 정도로 여겼고 8살이나 연상이라고는 생각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민씨의 변함없는 구애에 박해미씨는 결국 마음을 열게 되었고 5년동안 동거를 하게 됩니다. 



우연인지 캐나다 교포였던 황민씨는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간 박해미씨 가족과도 연결된 키워드가 있었습니다. 

황민씨의 부모님은 돌싱에 연상인 박해미씨와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였고 둘째 아들을 낳고 나서야 인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해미씨는 재혼 후 점차 커리어에 있어서 성공을 쌓아가는데  맘마미아의 오디션을 본 후 도나역할에 캐스팅됩니다. 

세계적인 뮤지컬에 중요한 배역으로 캐스팅된 후 박해미씨는 주연급 뮤지컬 배우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방송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임성한 작가의 sbs 하늘이시여가 최초였는데 처음에는 임성한 작가가 박해미씨를 안하려고 했닥고 합니다. 



악독한 계모 배득 역할을 맡기에는 예쁘다는 이유였고, 이에 다른 스태프가 맘미미아 비디오 테이프를 임성한 작가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작가는 하늘이시여 배득역할에 박해미씨를 캐스팅하고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에게도 인정받게 됩니다. 

그 후 거침없이 하이킥에 ok 며느리로 출연하면서 드디어 스타가 됩니다. 


박해미씨와 정준하씨가 부부역할로 출연하면서 기세고 통통 튀는 며느리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박해미 아들 임성민 황성재




박해미씨는 첫 아들 임성민씨와 헤어진 지 7년만에 만나게 됩니다. 

엄마를 보자마자 우리 엄마 옛날보다 더 예쁘네라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첫아들 임성민씨는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서 일하는 엘리트로 잘 자라주었습니다. 



박해미씨와 황민씨가 결혼할 때 황민씨는 큰아들하고 같이 살자고 약속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첫아들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20대 이후에 박해미씨 가족과 함께 살며 못다한 엄마의 사랑을 만끽하였습니다. 


공부 잘하는 첫아들 덕분에 둘째아들 황성재씨는 덩달아 공짜 과외 공부도 했다고 하니 엄마로서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박해미 빚과 사기


박해미씨는 사회생활에서 항상 잘 나간 것은 아닙니다. 

아이두 아이두라는 뮤지컬을 직접 제작하였고 망하고 맙니다. 이 와중에 사기까지 당하면서 빚만 수억원으로 불어났고 

박해미씨는 법정 구속될 처지에 놓입니다. 


이 당시 남편 황민씨가 200만원식 월급에서 차압당함녀서 빚을 갚아주었다고 합니다. 박해미씨의 구속이 면한 것은 남편 황민씨가 빚을 성실히 갚겠다는 조건이었을까요?   


하지만 겉으로 보기와는 다른 큰 갈등도 있었는데 일에 미쳐 바깥에서 일하는데, 남편 황민씨는 외로움과 열등감을 친구들과 만나며 술 마시는 것으로 달랬다고 합니다. 



점차 술을 너무 마시고 잔소리도 심해지면서 박해미 황민 커플은 큰 싸움도 여러번 났고 아들 황성재씨는 많이 불안한 생활을 거쳤다고 합니다. 


술로 인한 갈등이 심했고 박해미씨가 음주운전 사고가 나기 몇년전부터는 남편을 그냥 놓았다고 하네요~

겉으로는 그러한 부분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고 음주운전은 10번 중 1번 정도 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황민 구리 음주운전 사고 



황민씨가 사고난 날에는 다른 사람들은 술에 취하지 않았고 황민씨만 만취했다고 하는데 

왜 운전을 하도록 두었는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회사 사장이나 마찬가지인 황민씨가 술자리를 자주 만들고 술을 계속 먹인다는 이야기를

이미 고인이 된 분들이 하셨다고 합니다. 


제왕이나 마찬가지인 황민씨의 일관련 얘기를 하기 위해 소집한 술자리였고 배우들이 거부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사고를 당한 유대성씨는 해미뮤지컬 컴퍼니 소속 배우였고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티브이에 한 번 나오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유대성씨의 지인은 죽어서야 티브이에 나왔다며 오열하였습니다. 


황민 음주운전 사고로 죽은 또 한명의 사람은 박해미씨가 재직중인 동아방송예술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만 19세의 나이로 경쟁률이 치열한 동아방송대를 입학하고 박해미씨 회사의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박해미씨와 황민씨 부부가 결정적으로 이혼하게 된 부분은 황민씨가 사고 후 벌을 달게 받겠다는 자세보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모습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고가  난 후 집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박해미씨는 황민씨가 기쁠때만 가족이면 앞으로 더이상 나에게 가족은 없다라는 인터뷰를 보고 '기가 막히다, 애처럼 모든 것을 다 받아달라고 하느냐?'고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황성재씨의 대입 면접에 아빠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박해미씨가 충격을 받았고 소속배우들에게 큰 죄책감과 황민씨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극에 달햇고 이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융자가 잔뜩 끼었던 전원주택을 사고보상금으로 지급하기 위해 팔게되었는데  전원주택은 전망이 탁 트인 곳에 위치한 그림같은 집이었습니다. 



평생 살 생각을 하고 산 집이었기에 앞마당에는 부부의 무덤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던 황민 박해미 부부는 방 하나하나 예쁘고 멋있게 꾸며두었습니다.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평생 살거라는 말을 몇번이나 하던 두 사람의 모습에서 2년도 안되어 음주운전이라는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본인과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나큰 불행을 가져올지 누가 알았을까요? 



온 가족이 캐나다 여행을 가서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던 한 때도 있었고 가족음악회를 하며 너무 즐겁게 지냈지만 2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음주운전으로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박해미씨가 이혼을 하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잘했다는 댓글이 압도적입니다. 


그냥 아무사고 없는 음주운전으로도 한순간에 잘나가던 연예인에서 범법자로 전락하는 마당에 전도유망한 인재 2명을 한순간에 죽게 했으니 살인죄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현재는 박해미씨와 아들 황성재씨가 함께 살며 사고보상금을 지급한 후에 월세 빌라로 이사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1년 후 정신과를 찾은 그녀는 슬픔과 우울 불안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는데 이는 방어기제가 강하게 작용해서 그렇답니다. 



공인으로서 제자 2명을 잃고 큰 사고를 수습하고 25년동안 함께 산 남편과 한순간에 이혼하게 되었고 평생 살려고 생각했던 집까지 팔게 되고 보통 정신력으로는 살기가 힘들지 않았을까요? 


박해미씨는 남편 사고  이후 1년간의 공백기를 가지고 대학교수 이외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오캐롤 뮤지컬 제작진에서 연락을 받는데 박해미씨가 없다면 공연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닏다.


두 남편은 떠났지만 박해미씨에게는 든든한 두 아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팬들의 사랑과 격려 속에 힘내어 재기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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