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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참시 조명섭 나이 고향 말투 가족사 가요무대 북한


본명은 이희언 1999년생으로 21살의 나이입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김명섭이었는데 기쁠 희 말씀 언 한자를 쓰는 이희언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국민손자이며 KBS 아들로 불리우게 된 계기는 KBS 방송을 통해서 데뷔를 하고 가요무대에 거의 고정출연까지 하고 있습니다. 


KBS 트롯이 좋다에서 최종 우승하여 데뷔, 음반 발매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노래가 좋다 특별기획 트롯이 좋다에서 우승 당시 트롯 대가 설운도씨와 하춘화씨로부터 현인, 남인수의 환생이라는 극찬을 들었습니다. 



3개월만에 우승한 트롯신동 조명섭은 21살답지 않은 말투와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불후의 명곡에서 신라의 달밤과 베사메무쵸 2곡을 메들리로 멋드러지게 소화하여 갈채를 받았습니다. 


청명하고 맑은 바리톤의 중저음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클래식 창법을 트롯, 전통 가요에 접목시켜 새로운 장르로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듣습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담백한 창법으로 성악 스타카토와 재즈 트롯을 합친 듯한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합니다.


KBS 안녕하세요? 에 출연했던 조명섭군은 옛것들을 넘 좋아하는 애늙은이 동생으로 출연한 적 있습니다. 워낙에 방송컨셉이 많다보니 전참시에 출연하는 조명섭씨의 모습이 가짜가 아니냐? 의심도 사긴 했는데 너무나 본인의 모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 손에 크다시피 한데다 현인 선생과 옛날 가수분들의 노래를 수천 수만번을 돌려들으면서 터득한 창법이라서 그런지 말투 자체가 할머니 할아버지같은 말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 즉흥 멘트할 때 '이 사람이 아니죠~' 요런 말투를 쓰는데 두세대 이상의 말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명섭씨의 말투를 잘 분석해보면 어린 손주에게 무언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는 할머니의 말투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삶의 이치에 대해서도 친절하고 따뜻하게 알려주셨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말씀하시는 어투랑 굉장히 비슷합니다. 


오죽하면 별그대의 도민준 아니냐? 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커피 탄산음료 대신 숭늉과 식혜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 



조명섭군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넘 어려워 학생의 나이에도 아르바이트를 수십개를 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때 2년 정도 대수술을 하며 학교를 제대로 못다녔고 여러가지 상황에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들은 현인 선생의 노래를 듣고 큰 감동을 받고 혼자서 독학으로 창법을 터득해나갔습니다. 


수많은 전통가요를 따라부르면서 고단한 삶에 위로를 얻었고, 기독교인으로 신앙 생활을 통해 감정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후 조명섭만의 독보적인 음색과 창법으로 순식간에 전국구 스타가 되었습니다. 


피눈물나는 조개의 아픔과 상처뒤에 영롱하고 맑은 보석 진주가 나오듯이 진짜 크고 좋은 진주일수록 태평양 바다 깊숙히 오래오래 자라야 합니다. 대양의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진주알같은 지금의 조명섭씨의 목소리가 탄생한 듯 합니다 




현인씨를 무척 좋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약간 현인씨의 목소리 느낌이 살짝 나지만 결코 모창 가수는 아닙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클래식하고 담백한 가창력과 중저음의 바리톤의 풍부한 성량을 갖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열광하는 목소리입니다. 


생전 가요무대를 안 보던 분들도 조명섭씨 덕택에 가요무대를 챙겨본다고 할 정도로 어느새 팬덤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르신 팬들에게는 옛 가수들의 노래를 존중하면서 고급스럽게 부르는 21살의 남자청년에게 시간 여행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뽕필 나는 엔카 느낌의 트롯트가 아니라 초창기에는 기교가 배제되고 멜로디와 가창력이  중시되는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또한 배호라는 가수를 유일하게 좋아하셨는데요?! 배호라는 가수 노래는 이리저리 꺽고 밀당하는 듯한 음악이 아닌 담백하면서도 애절한 창법이 일품입니다 어릴 때는 아빠가 벼룩시장에서 어렵게 배호 LP판을 구해서 들으시는 것을 보고 나훈아, 조용필처럼 유명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어서 신기해했던 생각이 나는데요!? 


배호, 현인, 조명섭 가수 모두 심플하고 담백한 듯 한 창법으로 들으면 들을수록 계속해서 듣고 싶은 매력이 있습니다. 마치 시간여행자 양준일씨처럼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만큼 질리지 않아 매력적이란 특징이 있습니다. 


마치 쌀, 물처럼 강한 맛은 아니지만 우리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어 하루 2끼 이상은 먹어줘야 하는 주식같은 느낌요?! 

그래서인지 조명섭 가수의 첫 광고도 쌀 CF 로 들어왔습니다 ㅋㅋ





조명섭씨는 아이오케이 컴퍼니라는 기획사와 매니지먼트 게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대형 트롯 신인이 손잡은 회사는 과연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고현정, 조인성, 이영자, 김숙, 장윤정 등 그 분야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더라구요~! 그만큼 사기당할 염려도 없고 철저하고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명섭 선천 하지 장애 


조명섭씨는 어려서 선천적인 하지장애를 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7살부터 9살까지 누워만 지내야 했는데 다행히 2년 후에는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슈트발이 너무 좋은 기럭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키는 160cm 정도이지만 키가 작고 날씬한 체형으로 인해 훨씬 더 커보이며 비율이 좋아 옷발이 잘 받습니다 


조명섭 어머니들께 BTS?


어머님들에게는 조명섭씨가 거의 비티에스 수준인 것 같습니다. 요새 노래 아무리 들어도 감흥 안오고 격렬한 칼군무와 적응 안되는 멜로디와 세계관이라든지 너무 심오한 듯한 가사들도 오히려 노래 한곡 듣는데 알아야할 것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 기분전환이 아니라 머리만 더 복잡해지는 듯 합니다. 


조명섭씨의 어설프고 귀여운 춤사위는 어머님들께 막내아들의 발재간 정도로 보입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멀리서부터 보러온 어머님들께 큰 웃음과 위로를 드리는 것 같아요! 나중에 다같이 사진 찍는 팬서비스를 할 때에도 어머님들은 조명섭씨를 가까이서 보는 것 만으로 숨이 안쉬어진다고 하실 정도입니다 ㅋㅋㅋ 


조명섭씨는 어려서부터 가난과 건강때문에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었기에 우울증이 왔고 12살에 현인 선생의 노래를 들은 이후 계속 노래연습은 해왔지만 가난 등의 문제로 인해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하다하다 지쳐서 5년 정도 노래를 그만두었고 그 때 써놓은 소설, 시, 일기 중에서 500편 가까이를 버렸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도 숭실 사이버대 방송문예 창작과를 다닐 정도로 글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데요?! 하루에 서녀편 정도의 글을 써내려 갈 정도로 필력이 있습니다. 


아마 잘 걷지 못하고  누워만 지내던 어린 시절 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가 글을 쓰는 것 아니었을까요? 어차피 또래 애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하니 책을 읽고 음악과 영화를 보는 것으로 하루의 시간을 많이 보내었겟네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오래된 카사블랑카 등의 영화를 많이 보고 출시연도까지 기억하는 것은 집에 있던 오래된 비디오 영화들을 몇번이나 돌려보았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어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꼬맹이 조명섭이 10여년 후에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가수가 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요? 아무리 인기가수라도 악플이 없을 수 없는데 조명섭군의 경우에는 악플은 찾아보기가 어렵고 어머니 아버님들의 자식, 손주 챙기는 댓글 밖에 안 보입니다. 


부자되고 예쁘게 살아라는 읽으면 괜히 울컥하는 댓글들 보면서 정말 조명섭군의 마음의 우울증이 이제는 거의 남아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도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무대위의 조명섭 가수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200% 온몸으로 뿜어내는 독보적인 매력의 가수 조명섭 

김연아처럼 정말 까면 돌 날라오는 그런 국민 손주로 거듭난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행복하고 사랑스럽게 한걸음 두걸음 걸어가며 오래오래 힐링송을 불러주는 조명섭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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