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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나이 남편 공효석 성형수술 집안 공하이 딸 


남현희는 한국 여자 펜싱의 레전드, 전설입니다! 


무려 99개의 국내외 대회 메달을 가지고 있고 한국 여자 펜싱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메달리스트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 2012년에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땄고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과 동일한 금메달 6개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작은 키로 10~20cm 더 큰 선수들을 상대하며 메달까지 따내는 남현희씨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럼 대한민국 펜싱 영웅 남현희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남현희 나이는 올해 38세이며 1981년생 경기도 성남 출생입니다. 

남현희씨는 중학교 때 반에서 키가 2번째로 작았지만 멀리 뛰기에서 가장 좋은 기록을 보이며 펜싱코치를 겸하고 있던 체육교사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날부로 펜싱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국내에서 남현희를 따라잡을 사람이 없었답니다.




작은 키가 오히려 동기부여?! 


육상선수부였던 아버지와 배구선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남현희는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하지만 타고난 운동신경으로는 약점으로 지적되던 단신 선수가 장신의 서양선수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동메달을 따면서 다른 선수들보다 한껏 초라해진 자기자신을 보며 대한민국 펜싱까지 얕잡아볼까봐 힘들었던 남현희 선수는 꼭 금메달을 따서 다른 선수들과 키높이를 맞추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떨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현희 선수네 집은 비싼 펜싱장비 등을 사줄 여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30년동안 장갑 만드는 가내수공업으로 어렵게 집안을 이끌어오신 아버지 어머니는 펜싱장비를 풀세트로 사준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집에 압류딱지가 붙은 적 있을 정도로 집안 형편은 녹록치 않았고 남현희 선수는 참가비때문에 일부러 경기에서 진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현희 성형수술 사건


남현희 선수는 올림픽 메달 이전에 일찌감치 유명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형수술 때문에 선수로서 2년 자격정지를 당한 것인데요?! 속눈썹이 찌르는 눈때문에 늘 힘들었던 남현희씨는 쌍꺼풀 수술과 푹 꺼진 볼을 살리는 지방주입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사실 이미 지도자들에게 보고가 다 올라간 사안이고 금방 회복되어 일상에 복귀할 줄 알았던 간단한 성형수술이 남현희씨 인생을 크게 흔들어 놓습니다. 제때 훈련에 복귀하지 못한 남현희씨는 징계를 당하게 되었고 수술을 허락한 지도자까지도 허락한 적 없다며 발뺌하는 바람에 여론은 남현희씨에게 안 좋게만 돌아갔습니다 



결국 선수협회에서 나온 사람에 의해 하루 아침에 태릉선수촌에서 퇴출되었고 아직 붓기가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범죄자처럼 머그샷 촬영까지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남현희 선수가 조목조목 사안에 대해 사실을 밝혔고 처음부터 미용목적보다는 경기력 향상과 재건성형에 가까운 꼭 필수적인 성형수술을 한 것을 선수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며 매도되는 남현희씨에게 동정여론이 일었고 2년이 아닌 6개월의 자격정지로 사안은 마무리되게 되었습니다. 


남현희씨는 결과적으로 2년 정도 선수생활을 못하게 되었다고 하니 실제 훈련에 복귀하고 다시 대회에 참가하기까지 쉽지 않았나 봅니다. 남현희의 국가 대표 펜싱지도자들이 사실 서로 알력싸움을 하다가 남현희 성형수술이 굉장히 크게 부각되어 희생이 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국가 대표 남자 펜싱 원우영 선수가 펜싱을 그만두려는 남현희씨를 그렇게 붙잡고 격려해주었답니다. 후에 올림픽이 끝나고나면 결혼하기로 했는데 결혼할 인연은 아니었는지 결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지금은 대다수 국민들이 아는 사실이지만 아직도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분들이 있기에 남현희 선수는 두고두고 이사건을 회자하며 안타까워 학고 있는 사건이랍니다 만약 여기에서 남현희씨가 좌절하고 끝났다면 오늘의 남현희 선수는 그저 성형수술하다 선수촌에서 퇴출된 얼빠진 선수로 기억할 것입니다. 땅콩검객 남현희씨가 그럴리 없죠~ 


그녀는 코치진의 도움없이 혼자서 국제대회에 출전하였고 내친김에 올림픽 참가 자격까지 따버립니다. 세계랭킹 17~ 24위 선수가 쌍커풀 수술 후 펜싱 세계 랭킹 4위까지 올라가면서 남현희 선수의 경기력이 예전보다 훨씬 향상되었음을 보여주었고 남현희 선수의 억울함이 풀리게 된 것이었죠~ 



2008년 베이징올림픽 펜싱 플레뢰 결승에서 이탈리아 발렌티나 바첼리 선수를 만나 1점차로 안타깝게 패하며 은메달을 딴 것은 정말 실력차가 거의 나지 않은 경기라는 것을 보면 남현희 선수가 얼마나 세계적인 선수였는지 알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피겨선수 김연아, 빙속여제 이상화 선수처럼 메달이 전혀 없어 그만큼 투자나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속에서 세계 1등의 경기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펜싱 메달리스트 남현희는 유치하고 야비하기까지 한 지도자들끼리의 알력싸움에서 희생양이 되어 오명을 쓴 채로 펜싱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올림픽에서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4년후 런던 올림픽에서 바첼리 선수를 또 만났는데 3, 4위전에서 또 패하면서 메달권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남현희 선수가 대기실에서 펑펑 울었다고 하는데 바첼리선수가 남현희 선수 등을 두들기며 위로해주었다고 합니다. 


남현희 선수 몸 이상?! 


선수생활을 하면서 작은 키로 상대선수를 계속 부딪히는 바람에 얼굴도 비대칭이고 상대를 찌르는 동작을 하며 한쪽 엉덩이뼈가 계속 자라 제대로 앉아 있기도 쉽지 않다고 하네요~ 몸에 이상이 있어도 진통제 이상을 복용 못하는 국제 도핑 문제 때문에 은퇴한 지금은 마음껏 약을 복용해도 아무도 뭐라 안해서 너무 좋다고 합니다. 



남현희 결혼 남편 공효석 


남현희 선수는 대한민국 싸이클 국가 대표 선수인 공효석과 결혼을 하여 슬하에 딸 한명을 두고 있습니다. 남현희 선수 남편 공효석선수는 땅콩 검객 아내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공효석씨는 클라이밍 분야에서는 따라잡을 자가 없다고 합니다. 뚜르드 코리아에서 3위를 한적 있고 남현희 선수처럼 비인기 종목이지만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편 출생지 또한 경기도 성남으로 남현희씨와 똑같습니다. 1986년 1월 1일생으로 남현희씨보다 5살 연하입니다.  수원대학교 스포츠경영심리학과 전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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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은퇴 결심 여러번... 


남현희 선수는 사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바로 은퇴를 하는 것도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더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 대신 남현희 선수는 올림픽 결승전에서 1점차로 아깝게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늘 금메달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2번의 올림픽에서 베찰리에게 패했지만 2개의 은메달, 동메달이 있는 상태에서 출산 이후 리우올림픽 출전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감독이 남현희에게 또한번 제안을 한 것입니다. 남현희 선수는 출산 후 100일만에 다시 태릉선수촌으로 복귀하였고 젊은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눈총과 비난을 감내하며 다시 올림픽 출전을 준비했습니다. 



성남시청에서 출산후에도 변함없이 급여를 지급하였는데 그에 대해 감사해하던 남현희는 다시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성남시청에 보답하고 국내 최초로 엄마펜싱선수로서 올림픽을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몸이 출산전과 너무 달라져 있어 강도높은 훈련을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휴대용 초음파 탐지기 등 혼자만의 방법으로 불리한 조건을 타파해나갔습니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 32강전에서 일본선수와 만난 남현희선수는 1라운드를 끝내자마자 근육이 경직되고 온몸을 조여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12년전 올림픽과 너무 달라진 자신의 몸상태를 보며 다음 경기는 안봐도 뻔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결국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상태로 상대선수에게 계속 리드당했고 그대로 32강 탈락을 하고 말았습니다. 



출산하고나서 뼈가 다 열린 상태로 강도높은 훈련을 계속하면서 남현희 선수의 몸이 너무 힘들어졌나 봅니다. 100일된 아기도 두고 후배들 앞길 막는다는 비난을 감내하면서까지 죽을 힘으로 다시 올림픽에 나간 것인데 허무하게 32강에 탈락했지만 남현희 선수는 아쉬움보다 더이상 경기결과에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되어 너무 홀가분했다고 합니다. 


남현희 선수 딸 공하이양이 무척 보고 싶었고 자연스레 은퇴 수순을 밟는지 알았는데, 남현희 선수는 리우 올림픽 이후에도 한참을 더 선수로 활약하였습니다. 그것도 바닥을 기는 선수가 아닌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서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고 리우올림픽 후에 나간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바로 따게 된 것입니다. 




출산 후 3년이 지나자 출산전의 몸상태보다 체력적으로 더 좋아졌음을 확인하였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무리하게 올림픽까지 나갔을 때보다 훨씬 더 피지컬이 좋다고 하니 !! 


사실 출산 후 3년이 지나면 붓기도 거의 빠지고 다시 예전 몸매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살도 찌기 쉬운데 엄마가 가족들 먹거리를 챙기면서 그만큼 건강에 신경 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출산전 상태로 돌아간 3년 후 체력이 좋아졌고 이에 다시 날라다니며 아시안게임 등을 휩쓸게 됩니다. 



남현희 엄마 암투병 


남현희 선수 엄마는 남현희 선수가 실업팀에 입단하고나서 자신의 엄마가 유방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남현희 선수가 걱정할까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어린딸 공하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겨두고 훈련을 하였습니다. 100일된 아기를 맡겨두고 훈련에 매진한 악바리 남현희 선수! 


우리가 흔히 출산휴가 갔다온 후 책상이 사라지더라! 이런 것도 전부 똑같은 강훈련을 받으며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낸 남현희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1%의 기적을 선사한 남현희 펜싱 여제 스토리, 나는 전설이다! 처럼 열등하게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우뚝 선 땅콩 검객 남현희 선수 


모든 신체조건을 구비했다면 이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을 겁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상대해주지도 않던 서양선수들에게 엄청난 스피드의 속도전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최고의 펜싱선수로 길이 길이 이름을 날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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