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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재혼아내 구원파 집안


세월호사건 당시 항간에 떠돌던 박진영 재혼아내가 

구원파 유병언 회장의 동생 유병호의 딸이라는 루머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은적이 있죠.


또한 작년 박진영이 구원파 전도 집회를 열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었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박진영 집안과 재혼아내, 구원파 관련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진영 안소희>


우선 박진영 집안과 성장배경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진영은 1972년 1월 아버지 박명노, 어머니 윤임자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박진영은 어린시절부터 끼가 남달랐다고 하는데요.

박진영 어머니 윤임자 - "진영이는 아기 때부터 반복적인 리듬이 나오면 무척 좋아했어요. 어디서든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들썩였거든요. 또한 워낙 사교성이 좋고, 한글도 일찍 깨우쳤고, 운동, 노래, 춤 다 잘하니까 굳이 유치원에 보낼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윤임자 - "피아노도 누나가 배울 때 조금씩 배웠는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초등학교 다닐 때 전교생 앞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했죠.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 때 미국에 갔으니 미국의 흑인 음악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죠."



박진영의 아이큐가 153이었다고 하는데요. 

한글을 깨우친 것도 4살때 누나의 어깨너머로 배우고 스스로 알았을 정도라고...어렸을 적부터 이런 천재성을 가끔씩 발휘합니다.
박진영 집안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어서 엄친아라 불릴만 했는데요.

박진영 아버지 박명노는 금융인으로 고려대학교를 졸업후 한국산업은행, 대기업 동부그룹 전무, 동부주택할부금융 대표 등을 역임했다고 합니다. 박진영 어머니도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했었다고 하네요.


박진영 아버지 박명노, 어머니 윤임자


윤임자 - "친정어머니가 서울대 사대 출신으로 제가 다니던 학교(한양여고) 교사셨어요. 저도 진영이처럼 음악·미술을 좋아하고 달리기를 잘했지만 그런 끼를 발현할 기회가 없었죠. 늘 가르마를 곱게 타서 옆에 핀을 예쁘게 꽂고 엄마와 함께 등교를 했어요. 학교에 도착해 엄마와 헤어지고 나면 얼른 핀을 빼서 뒷주머니에 꽂는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탈이었죠. 말하자면 저는 ‘억눌린 박진영’이었던 거예요(웃음). 그래서 ‘내 아이는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시키고, 중요한 일은 스스로 선택하게끔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박진영 어머니의 피에도 그런 예술성이 흘렀던 거 같습니다. 다만 박진영처럼 발산할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박진영은 머리 좋은 집안에서 그런 지능과 어머니의 예능적 재능을 그대로 물려 받은 것을 알 수 있죠.




박진영이 어렸을때, 박진영 아버지 박명노가 한국산업은행 근무 당시 미국지사로 파견되면서 해외발령이 나게 되는데요.

그렇게해서 미국생활을 하게 된 박진영은 예능적 천재성을 갈고 닦을 기회가 생깁니다.

박진영 아버지 박명노 - "진영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지금 학년에서는 더 배울 게 없으므로 월반을 시키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저희가 학교에 찾아가서 사정한 것도 아니에요. 학교 측에서 아이의 능력을 파악해 시간 낭비 하지 않게끔 해준 거죠. 계속 그 학년에 머물렀더라면 지루해서 공부에 싫증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점은 미국식 교육의 장점이라고 봐요."



이렇게 박진영은 초등학교에서 월반을 했고, 또 미국에서 흑인 음악을 접하게 됩니다.

박진영 스스로 힐링캠프에 나와서 자기 인생 최고의 행운으로 다섯가지를 꼽은 적이 있죠.

박진영: "1.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것 2. 엄마가 피아노를 치게 한 것 3. 미국에서 2년 반을 산 것 4. 그때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만난 것 5. 2년 반 동안 영어를 배운 것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귀국한 뒤 박진영은 힘들어 합니다.

박명노 - "한국은 미국에 비해 학교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것 때문에 힘들어 했어요. 특히 아이 몸집이 큰 편이라 책상과 붙어 있는 의자에 몸을 구겨 넣는 게 괴로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박진영 아버지 박명노의 선택은 보통의 아버지와 달랐습니다.

"진영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으면 제가 클럽에 데려다주고 실컷 춤을 추게 했어요. 대신 술 담배는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그러곤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아이가 나오면 다시 차에 태워 집에 데려 오곤 했어요."




게다가 박진영이 대원외고 진학을 포기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윤임자 - "(대원외고) 합격통지서를 받고 나서 진영이가 학교에 같이 한 번 가보자고 했어요. 학교를 돌아보니 공부를 많이 시키는 분위기예요. 진영이가 감옥 같아서 싫다고 하더라고요. 진영 아빠가 그 자리에서 ‘정 아니겠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어요."

당시에 대원외고가 지금과 같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박진영 부모님은 큰 결심을 한 거 같습니다.




그러다가 박진영 어머니는 아이의 적성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윤임자 - "고3 때 시험 공부를 한다며 친구와 도서관에 간다고 나갔는데,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제가 찾으러 나갔죠. 그런데 웬걸, 그 밤중에 4차선 아스팔트 위에서 친구와 춤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거예요. 한데 그 표정이 굉장히 행복해 보였어요. 몰래 숨죽여 지켜보면서 ‘진영이는 저 길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진영이가 가수로 사업가로 성공한 것도 좋지만 그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게 부모로선 가장 뿌듯해요."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넘긴 박진영은 연세대학교 진학에 성공했고, 후에 가수로 데뷔하며 꿈을 펼치게 됩니다.


박진영 재혼아내 구원파


박진영은 전부인 서윤정과 2010년 이혼한 후, 3년이 지난 2013년 현재의 아내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요.


박진영 - "저에게 ‘너뿐이야’라는 곡을 쓰게 만든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아홉 살 어린 평범한 친구인데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계속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 때문에 우여곡절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많은 대화를 통해 결국 서로에게 필요한 신뢰를 얻었고 마침내 그녀가 저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여 다음 달 10일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박진영 - "서로 첫눈에 반한 건 작년(2012년)이 처음이었다. 그 친구도 어릴 적부터 나를 이상형으로 꼽아왔다. 내 이상형은 연예인 같은 사람보다 이목구비가 작고 평범한 여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박진영 현재 부인이 세모그룹 유병언의 조카라는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이는 곧 사실로 밝혀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박진영 해 - "아내가 문제가 된 회사(청해진해운) 소유주들과 친척이라는 것 이외에는 어떤 연관도 없는데, 아무 얘기나 막 써도 되는 나라인가요?"
박진영 - "제 신앙에 대해서는 제가 한 모든 인터뷰나 음악을 들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많은 종교를 공부해봤으나 여전히 무교입니다. 더 이상 근거 없는 얘기가 떠돌아다니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8년 5월 디스패치는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자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이 지난 3월 구원파 전도 집회를 이끌었다고 보도했는데요.

디스패치에 따르면, 이날 구원파 교리를 전하는 박진영씨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음성이 담긴 녹취 파일까지 공개했으며 박진영씨가 집회에 배우 배용준씨도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박진영은 자신의 SNS에 자신이 지난달 구원회 집회에 참여했다고 보도한 매체를 캡쳐한 사진을 올리고 "제가 돈 내고 제가 장소를 빌려 제가 가르친 성경공부 집회가 구원파 집회라구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제 개인적으로나 JYP엔터테인먼트 회사 차원에서 속칭 구원회 모임의 사업들과 어떠한 관계도 없는데 구원파라구요?" 라며 "도대체 저와 우리회사에게 입히신 피해를 어떻게 책임지시려고 사실 확인조차 없이 이런 글을 보도하신거죠"라고 덧붙였습니다.



박진영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간증문에는 무교이던 그가 어떻게 성경을 믿게 됐고, 성경을 가르치게 됐는지가 상세히 기재돼있는데요. 

박진영은 "성경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해 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성경책에 쓰여있는 수많은 예언 중에 한 개라도 틀린 것이 있는지 보면 되는 것이었다"며 이후 "틀린 걸 찾기는 커녕 오히려 성경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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